다른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써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용서를 해야 한다는 것은 상대방으로부터 배신을 당했거나 그 상대방으로 인해 나 자신이 크나큰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써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보통의 마음은 이렇습니다. “내가 아픈 만큼 너도 아파야 한다는 것” 우리들이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절대로 용서하려는 마음이 쉽게 생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스스로 신앙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을 하는 우리들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다가와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이에 예수님의 대답은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이 대목을 보면서 평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어떤 말씀을 하셨고 무엇을 강조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용서”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2000년 전 그리고 지금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용서이어야 하는지 예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복음에서는 주인과 종 두명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 종은 주인에게 불려가 빚을 갚지 않았기 때문에 감옥에 갈 운명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 종은 기한을 몇 번을 어긴 종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종은 두손 두발 빌면서 참아달라고 하였는데 주인은 아예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풀려난 종은 자신에게 빚진 동료 종을 보게 됩니다. 그 종은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지만 감옥에 가게 됩니다. 이러한 악한 종을 주인은 고문 형리에게 넘겨 버립니다.
용서를 해야 하는지 우리들은 고민을 합니다. 왜 용서를 해야 하는지 스스로 자문 할 때도 있습니다. 용서를 한다면 나 자신이 얻는 것은 무엇인지 또한 자문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상대방이 잘못을 인정을 안하고 사과를 안했는데도 용서를 해야 하는지 묻기도 합니다. 정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용서가 바로 하느님을 믿는 이들이 하는 용서입니다.
오늘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용서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용서를 왜 해야 하는지 두 가지를 이야기 한다면 첫째 용서를 함으로써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 나 자신이 자연적으로 치유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용서 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마음 아픈 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죄인인 우리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들은 용서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용서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고 나 자신이 구원의 길로 가기 위한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현재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고 있다면 기도 중에 그 사람을 용서 하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기도가 끝날 쯤 여러분의 마음은 평화로 가득 찰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