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라는 말에 우리들의 지상에서의 삶의 방식이나 신앙인으로써의 삶의 방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어쩌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아주 중요한 일이 있다는 이유로 신자로써의 삶은 작아지고 지상의 삶의 위주로 살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산란해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서 우리들은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믿고 다음으로 자신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무엇을 믿으라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것에는 하느님이야말로 참으로 우리들의 아버지이시며 우리들의 생명을 창조하시며 우리들을 구원해주시는 분이라는 것,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하느님의 아들로써 우리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희생재물로 바쳤던 바로 그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내용 뿐 만이 아니라 또 다른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사목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이해를 못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물론 저는 외국인으로써 한국인의 신앙심을 보면서 일본을 판단을 해서는 안되겠지만 “내가 왜 이곳에 있어야 하는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기는 하는가!” 등등의 질문을 저 자신에게 하곤 합니다. 그러면서 저의 마음이 산란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저의 마음에 깊숙이 빠져 들어간다면 사제로써의 희망은 사라질 것입니다. 이럴때마다 저는 하느님을 믿고 저를 도와주실 것이라는 것도 믿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음이 아프고 괴로울 때 하느님께서는 항상 나를 사랑해주시고 가야 할 길을 알려주신다는 믿음에 힘이 생기곤 합니다. 저에게는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모두는 세상에 살면서 산란해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들을 성장시키는 것은 사회 혹은 정치적인 이슈들이 아닙니다. 그것들이 우리들을 구원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사회적인 문제들과 정치적인 문제들은 우리들을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벌써 블랙홀에 빠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사랑이 아닌 기도가 아닌 세상의 말들이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해서 경멸과 분노와 미움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을 발견합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구분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을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아멘!